송흰
[ Part 1. ]
Q1. ‘슬픔의 모서리’에서는 우연히 마주한 풍경을 통해 슬픔을 마주보고, 그 감정의 크기와 모서리를 회화로 가늠하는 작업입니다. 작업의 제목과 주제가 되는 ‘슬픔’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A1. ‘슬픔’을 이토록 깊게 느껴 봤던 적이 처음이었고, 마주하기 싫었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뒤늦게 드러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슬픔이 해결 된 후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곱씹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은 많고, 그림은 그릴 수 없을 만큼 헤매기를 반복했는데, 그때 유일하게 할 수 있던 활동이 탄천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가라앉은 밤의 분위기, 고요함을 증폭시키는 물소리, 달빛과 윤슬을 지나, 여러 번의 산책 끝에 언덕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은 그 언덕이 저에게는 한없이 크게 다가왔고, 그 곳에서 스스로가 조그맣게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습니다. 반복된 밤 산책 후, 그동안 할 수 없던 작업을 대신해 스케치북에 드로잉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얀 종이가 유약한 선들로 채워지며 한 장 더, 한 장 더 늘어가는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쌓여가는 그림들 속에서 가늠조차 못할 정도로 거대할 것이라 짐작했던 슬픔이 사실은 탄천에서 마주하는 언덕처럼 조그마한 크기 일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Q2. 이번 전시의 작품은 슬픔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 슬픔의 정량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A2. 감정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슬픔의 총량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였고, 언젠가 그것이 전부 채워지고 지나갈 것이기에 결국엔 마주해야한다는 결론을 지은 것 같습니다.
슬픔의 조각들 하나하나의 작은 단위들이 모여 언덕의 풍경을 재현한 것은 슬픔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라기보다는 그 또한 나를 이루는 중요한 감정임을 인지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림에 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Q3. 작가님의 작업 전반에서 ‘시간’이라는 주제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시간’에 집중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A3. 시간에 집중하게 된 것은 ‘왜 잘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거지?’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뛰어가고 있는데 혼자 그곳에 멈춰서있다는 정체감을 느꼈었고, 그림을 그리는 삶이 거꾸로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시간들이 옳은 건지에 대한 의문에 슬픔을 느꼈고, 한동안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깊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고, 자신만의 방법, 방향, 속도를 반추하며 삶이란 시간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그저 보내는 것이 아닌 ‘시간’에 머물고 싶었고,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 시간에 안에 잘 머물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다울 수 있는 방법, 개개인의 ‘quality time’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 Part 2. ]
Q4. 평소 일상 속 작가님의 성향과 상충하는 작업방식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이 의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A4.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최대한 러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둡고 푸른 무언가’ 라는 큰 틀을 정해두고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그림을 그리며 계획이 바뀌기도 하고, 이어지는 그림에 따라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수정하며 밀도를 쌓아갑니다. 그렇게 5~6겹으로 선을 쌓아가며 작품을 만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과정과 노동의 강도가 높은 제 작업의 성격이 제 강박적인 성향을 반영하는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최대한 유연하게 작업을 대하려고 합니다.
Q5. 작품 속 반복적인 선긋기와 깊은 색감은 명상과 수행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5. 수행적인 태도에 기대어 작업을 진행합니다. 반복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이 마주하는 자신과의 시간은 다양한 길이와 두께의 선으로 표현되며, 한지 위에 먹과 분채로 빼곡한 여러 겹의 장면이 쌓이게 됩니다. 좋아하는 단계는 가장 마지막에 색을 올릴 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과정은 여러 겹 선의 층을 쌓아가며 같은 자세로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별적이었던 작품들을 붙이고 이어놓은 뒤 그 흐름을 보며 전체를 위한 작업에 돌입하게 됩니다. 전체를 보며 작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도 커지게 되는데, 그러한 점이 즐겁게 다가옵니다.
Q6. 장지 위 푸른색의 봉채와 분채, 그리고 먹을 사용하여 쌓아 올린 수십 개의 선들은 ‘사선’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배치에 있어서도 비스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가님에게 있어서 ‘사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단하게 듣고 싶습니다.
A6. 평소에 주목하고 바라보게 되는 지점들이 대부분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입니다. 출퇴근길 버스를 타고 지나는 창가에서 발견한 비의 비스듬한 흔적과 자국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비와 흩날리는 눈들, 일렁이는 윤슬을 보았을 때 느낀 긍정적인 감정들을 사선의 백목으로 구현하기도 하고 설치와 배치에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푸른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 ‘잠잠한 걸음’ 위에 올라간 윤슬과 배치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Q7. 글자가 작품의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내일의 말’ 작업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는 말들을 어떤 기준과 경위로 선정하고 단어, 혹은 구절로 치환하는지 궁금합니다.
A7. 머릿속에서 스스로를 억제하는데 사용하는 말들은 아주 개인적이며 구어체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거나, 계속해서 입안에서 굴려보는 말은 단어나 구절로 끊기거나 작은 단위의 말을 택하려 합니다.
이전에 말이 드러난 작업에서는 다짐 위주의 성격을 띠었다면 현 작업에선 시간들을 통과하며 느낀 ‘시간성’에 대한 말들을 위주로 인출하며, ‘어제’, ‘오늘’, ‘내일’, ‘밤’, ‘낮’ 등 시간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앞으로 지속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단어들도 등장하니, 시를 읽듯 천천히 감상하며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Part 1. ]
Q1. ‘슬픔의 모서리’에서는 우연히 마주한 풍경을 통해 슬픔을 마주보고, 그 감정의 크기와 모서리를 회화로 가늠하는 작업입니다. 작업의 제목과 주제가 되는 ‘슬픔’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A1. ‘슬픔’을 이토록 깊게 느껴 봤던 적이 처음이었고, 마주하기 싫었던,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한 것들이 쌓여 뒤늦게 드러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슬픔이 해결 된 후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기에,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말들을 곱씹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은 많고, 그림은 그릴 수 없을 만큼 헤매기를 반복했는데, 그때 유일하게 할 수 있던 활동이 탄천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가라앉은 밤의 분위기, 고요함을 증폭시키는 물소리, 달빛과 윤슬을 지나, 여러 번의 산책 끝에 언덕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지도에 표시조차 되지 않은 그 언덕이 저에게는 한없이 크게 다가왔고, 그 곳에서 스스로가 조그맣게 느껴지는 감각이 좋았습니다. 반복된 밤 산책 후, 그동안 할 수 없던 작업을 대신해 스케치북에 드로잉을 시작하였습니다. 하얀 종이가 유약한 선들로 채워지며 한 장 더, 한 장 더 늘어가는 과정을 통해 다음 단계로 넘어갈 힘을 얻게 된 것 같습니다. 쌓여가는 그림들 속에서 가늠조차 못할 정도로 거대할 것이라 짐작했던 슬픔이 사실은 탄천에서 마주하는 언덕처럼 조그마한 크기 일 수도 있겠다는 안도감이 생겼습니다.
Q2. 이번 전시의 작품은 슬픔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혹 슬픔의 정량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A2. 감정을 대면하는 과정에서 슬픔의 총량이 분명 있다고 생각하였고, 언젠가 그것이 전부 채워지고 지나갈 것이기에 결국엔 마주해야한다는 결론을 지은 것 같습니다.
슬픔의 조각들 하나하나의 작은 단위들이 모여 언덕의 풍경을 재현한 것은 슬픔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라기보다는 그 또한 나를 이루는 중요한 감정임을 인지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창작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림에 담아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표현하고자 하였습니다.
Q3. 작가님의 작업 전반에서 ‘시간’이라는 주제의 공통점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유로 ‘시간’에 집중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A3. 시간에 집중하게 된 것은 ‘왜 잘하려고 노력해야하는 거지?’라는 생각에서부터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뛰어가고 있는데 혼자 그곳에 멈춰서있다는 정체감을 느꼈었고, 그림을 그리는 삶이 거꾸로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러한 시간들이 옳은 건지에 대한 의문에 슬픔을 느꼈고, 한동안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이 하루를 어떻게 사는지 깊게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나로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고, 자신만의 방법, 방향, 속도를 반추하며 삶이란 시간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을 그저 보내는 것이 아닌 ‘시간’에 머물고 싶었고, ‘작업을 하는 동안만큼은 이 시간에 안에 잘 머물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다울 수 있는 방법, 개개인의 ‘quality time’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 Part 2. ]
Q4. 평소 일상 속 작가님의 성향과 상충하는 작업방식이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작업 방식이 의도 하에 이루어지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A4. 그림을 그릴 때만큼은 최대한 러프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둡고 푸른 무언가’ 라는 큰 틀을 정해두고 천천히 더듬어 나가는 방향을 지향합니다. 그림을 그리며 계획이 바뀌기도 하고, 이어지는 그림에 따라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고 수정하며 밀도를 쌓아갑니다. 그렇게 5~6겹으로 선을 쌓아가며 작품을 만지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과정과 노동의 강도가 높은 제 작업의 성격이 제 강박적인 성향을 반영하는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의식적으로는 최대한 유연하게 작업을 대하려고 합니다.
Q5. 작품 속 반복적인 선긋기와 깊은 색감은 명상과 수행을 떠올리게 합니다.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A5. 수행적인 태도에 기대어 작업을 진행합니다. 반복과 사색을 통해 끊임없이 마주하는 자신과의 시간은 다양한 길이와 두께의 선으로 표현되며, 한지 위에 먹과 분채로 빼곡한 여러 겹의 장면이 쌓이게 됩니다. 좋아하는 단계는 가장 마지막에 색을 올릴 때인 것 같습니다. 이전 과정은 여러 겹 선의 층을 쌓아가며 같은 자세로 움직임을 반복하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개별적이었던 작품들을 붙이고 이어놓은 뒤 그 흐름을 보며 전체를 위한 작업에 돌입하게 됩니다. 전체를 보며 작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몸의 움직임도 커지게 되는데, 그러한 점이 즐겁게 다가옵니다.
Q6. 장지 위 푸른색의 봉채와 분채, 그리고 먹을 사용하여 쌓아 올린 수십 개의 선들은 ‘사선’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배치에 있어서도 비스듬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작가님에게 있어서 ‘사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간단하게 듣고 싶습니다.
A6. 평소에 주목하고 바라보게 되는 지점들이 대부분 일상에서 마주하는 것들입니다. 출퇴근길 버스를 타고 지나는 창가에서 발견한 비의 비스듬한 흔적과 자국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습니다. 흐르는 비와 흩날리는 눈들, 일렁이는 윤슬을 보았을 때 느낀 긍정적인 감정들을 사선의 백목으로 구현하기도 하고 설치와 배치에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어둡고 푸른 무언가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작품 ‘잠잠한 걸음’ 위에 올라간 윤슬과 배치가 그 예가 될 수 있습니다.
Q7. 글자가 작품의 전면 혹은 부분적으로 드러나는 ‘내일의 말’ 작업이 있습니다. 머릿속에서 끊이지 않는 말들을 어떤 기준과 경위로 선정하고 단어, 혹은 구절로 치환하는지 궁금합니다.
A7. 머릿속에서 스스로를 억제하는데 사용하는 말들은 아주 개인적이며 구어체로 표현됩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거나, 계속해서 입안에서 굴려보는 말은 단어나 구절로 끊기거나 작은 단위의 말을 택하려 합니다.
이전에 말이 드러난 작업에서는 다짐 위주의 성격을 띠었다면 현 작업에선 시간들을 통과하며 느낀 ‘시간성’에 대한 말들을 위주로 인출하며, ‘어제’, ‘오늘’, ‘내일’, ‘밤’, ‘낮’ 등 시간을 지칭하는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앞으로 지속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한 단어들도 등장하니, 시를 읽듯 천천히 감상하며 다양한 생각들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